아름다운 고장 칠곡 지천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문화유적

신동입석

신동입석
  • 소 재 지 : 칠곡군 지천면 심천로 5-7
  • 지정번호 : 지방기념물 제29호
  • 지 정 일 : 1972년 12월 29일

입석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로서 주로 지역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신앙의 대상물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석은 지석묘(支石墓)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에 지나지 않으나,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선사시대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 입석은 높이 약4.5m 밑둘레 약 2m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입석가운데 큰 규모에 해당한다. 입석의 동편 주위를 개간할 당시 무문토기, 석기 등의 발견된바 있어 이 입석이 청동기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면의 남면에는 후대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 각자한 글이 남아 있는데 이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불교의 종교적인 대상물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양서당 강당

사양서당
  • 소 재 지 : 칠곡군 지천면 신동서원길 15-10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17호
  • 지 정 일 : 1985년 8월 5일

사양서당 강당 (泗陽書堂講堂. 문화재자료 제117호. 1977년 12월 29일지정. 지천면 신리 43- 1)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문인 한강 (寒岡)정구 (鄭逑, 1543, 1620)의 학문연마와 강학 장소였던 사양서당의 강당이다. 당시 향인들이 현재 대구 북구 옛 칠곡면 사 수동 (泗水洞)에 한강을 기념하기 위해 효종 5년 (1651)에 창건하여 한강을 주벽 (主壁)으로 하여 석담 (石潭)이윤우 (李潤雨)를 배향 (配享)한 서원이다. 창건 당시 에는 묘우 (廟宇)와 강당, 폄우제 (貶愚齋), 정완재 (訂頑齋), 봉하문 (鳳下門), 양현 청 (養賢廳, ) 주고 (廚庫)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고종 5년 (1868)대원군의 서 원 철폐령에 의하여 지금의 강당인 경희당만 남게 되었다. 숙종 20년 (1694)에 현 재의 장소로 이건하면서 송암 이원경 (李遠慶)을 별사 (別祠)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 경희당은 북향으로 정좌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어칸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두고 좌우 퇴칸의 전면에는 뒷마루를 두었다. 막돌기단 위에 자연 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방주를 사 용하여 주두 위에는 니익공으로 장식한 흩처마 맞배지붕이다.

찾아오시는길

  • 버스이용시 : 왜관읍 버스정류장(지천행)→신동→신4리 윗갓마을→사양서당
  • 자가용이용시 : 경부고속도로(왜관IC)→대구방면(4번국도)→지천면소재지→923번지방도→신4리 윗갓마을→사양서당

칠곡 경수당

칠곡 경수당
  • 소 재 지 : 칠곡군 지천면 상지1길 45-1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583호
  • 지 정 일 : 2011년 3월 28일

경수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 석담 이윤우(1569-1634)가 세거하던 자리에 지어진 주택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법무부 형사국장을 지낸 바 있는 김낙헌이 거주하던 집이었다. 이후 낙헌의 친구인 후석 이주후(1873-1957)가 매입하여 지천면 상지1길 45-1(경수당의 재실인 영모헌이 있던 곳)에서 지금의 자리인 상지1길 45-1로 이거해 오면서 벽진 이씨 후석파종택으로 삼았다 한다. 칠곡 신리 웃갓마을의 북쪽 끝편에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자리하였다. 800평 규모의 넓은 대지에 一자형의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광채가 동향으로 나란하게 병렬 배치되어 있고 안중사랑채가 사랑채와 안채사이에 남향으로 직교 배치된 형식이다.

경수당은 생활의 편리를 위해 창호교체와 일부 증축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간결한 평면구조와 영남내륙지방의 분동형 배치, 그리고 사랑채의 물익공형 초각장식등은 특징적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유구로 당시의 정치제도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담양담 등이 남아 있다.

칠곡 녹봉정사지

칠곡 녹봉정사지
  • 소 재 지 : 칠곡군 지천면 창평로3길 77-60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585호
  • 지 정 일 : 2011년 4월 18일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 이곳에는 녹봉사(鹿峰寺)라는 절이 있었다 하는데, 전국의 사적(寺籍)을 보관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이 조선시대에 폐허가 되어 내려오던 것을 1561년(명종 16)에 성주목사 황준량과 교수 오건 등이 중심이 되어 개축하고 건물 몇 채를 새로 지어 녹봉정사라 하였다.

지금은 건물이 남아 있지 않지만 성정당(誠正堂)·시습재(時習齋)·양정헌(養正軒)·양호루(養浩樓)·관물대(觀物臺) 등의 현판은 모두 이황이 직접 명명하여 편액한 것이다. 이후 지역 내에 퇴계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오늘날 녹봉정사라 불리는 건물은 본래 방대하였던 녹봉정사의 부속 건물로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칠곡군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가(古家)로 추정되었으나 2009년 4월 6일 인근에 발생한 산불 때문에 소실되어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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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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